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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811 / 차사순
    시사행시 2010 2010. 8. 11. 04:33

    차사순 할머니 “차 몰아보니 겁나게 좋네… 포기혔으믄 어쩔 뻔혔어?”

    960번 만에 운전면허 합격

    경향신문 | 완주 | 김희연 기자 | 입력 2010.08.10

     


    새벽 4~5시면 일어나 그날 시장에 내다팔 나물이며 채소를 따러 산으로 밭으로 다니는 차사순 할머니(69). 하지만 지난 6일은 달랐다. 이른 시간이지만 눈썹을 그리고, 빨간색 립스틱도 발랐다. 그토록 기다리던 '새 애인'을 맞이하기 위해 곱게 단장한 것이다. 이날은 무려 960번 만에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해 세상을 놀라게 한 차 할머니가 드디어 '오너 드라이버'가 되는 날이었다. 전북 완주군 신촌리에 사는 그는 이제 마을 어귀에서 이름만 대도 단박에 집을 알 수 있는 '스타'다. 의지의 한국인이란 이름으로 세계 통신사를 통해 뉴스가 타전되면서 해외 언론에도 소개됐고 국내 자동차회사 CF에도 모델로 등장했다. 누군가는 "늦은 나이에 운전은 무슨…"이라며 걱정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차 할머니가 오너 드라이버가 된 날, 그를 찾아갔다.

    할아버지 삼아 새 차랑 어디든 달릴 거예요

    "열쇠도 안 꽂고 진짜 좋네! 거시기… 갈라믄 (기어를) D에 놓아야지, 후진할 때는 R, P는 파킹. 호호 이렇게 잉." 차 할머니 집 마당에 흰색 자동차가 들어섰다. 그의 도전 이야기가 화제가 되면서 출연한 CF를 계기로 새 차가 생긴 것이다. 자동차회사는 CF에서 7월 한 달간 차 할머니와 다른 출연자들 사연에 매일 응원댓글 100건 이상이 달리면 차를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댓글은 때로 하루 4000건 이상 달릴 만큼 폭주했다. "할머니, 댓글 1만개 달려서 비행기도 타세요" 등 응원의 댓글이 많았지만, 개중에는 쉽게 포기해온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젊은이들의 글들이 많았다. 차 할머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관심 덕분에 이날 자동차를 받으며 오너 드라이버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차 할머니는 새 차에 선뜻 올라타지 못하고 이리저리 어루만지며 조심스럽게 살폈다. 트렁크도 열어보고 차 천장에 달린 창문(선루프)도 열어봤다. 버튼식 시동, 내비게이션 등 운전시험 때 타본 차량과 다른 최신형 기능이 많자 더욱 신기해했다. 겁을 내기보다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자동차 설명서를 보며 또 공부에 들어갈 참이었다. 지난해 11월 학과(필기) 시험을 950번 만에 합격한 데 이어, 올 4월 실기인 기능과 도로주행시험에도 각각 다섯번씩 도전해 모두 960번 만에 2종 보통 운전면허증을 딴 할머니는 부지런히 돈을 모아 작은 중고차라도 마련할 생각이었다.

    "며칠 살살 동네에서 타보다가 전주 덕진에 있는 동물원에도 가보고 잉, 아들 딸 집에도 가봐야지요. 무엇이든 장사도 해야겠고. (돌아가신) 할아버지 삼아서 어디든 같이 돌아다닐 거야."

    전주 중앙시장 노상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는 요즘 인사 받기에 바쁘다. 시장 상인들은 "아이쿠! 이거 하나 따려고 그 고생을 했느냐, 운전면허증 좀 구경해보자"고 하고, "텔레비전에 나온 아줌마 맞죠?" 하면서 일부러 찾아와 나물을 사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차 할머니는 자신이 나온 CF를 한번도 못 봤다. "텔레비전이 원래 잘 안 나오고, 내가 언제 나오는지 몰라 항시 켜놔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그때(CF촬영할 때)는 우리 집에 30명이나 왔어요. 3일 동안 촬영하면서 자꾸 웃으라는데 우스워서 죽겠드라니깐."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차 할머니 집에는 며칠 후 불굴의 도전정신을 취재하겠다며 대학생 기자단이 찾아올 예정이란다. 학과 시험에 합격하면서 차 할머니의 사연이 처음 알려졌지만 그 전에 그를 지켜본 주변 사람들은 "고생스러운데 그만 포기해라" "뭐하려고 자꾸 떨어지는 시험을 또 보느냐"며 만류했다. 사실 말이 950번, 960번이지 1부터 시작해 끝까지 세어보기도 지루한 횟수다.

    채소 장사를 하기 위해 운전면허증이 필요했던 차 할머니는 2005년 4월13일 첫 필기시험을 봤다. 15점, 35점, 40점, 50점, 58점까지 계속 점수는 올랐지만 합격점 60점에는 이르지 못했다. 주말과 국경일을 제외한 거의 매일 운전면허시험장을 찾아 시험을 치렀다. 집이 있는 완주에서 전주시 여의동에 있는 전북운전면허시험장에 가기 위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는 등 하루의 절반을 보냈다. 남는 시간 시장에 나가 호박 다섯 개에 3000원씩 받으며, 많이 파는 날엔 1만원을 버는 삶이었다. 학과시험 인지대로 쓴 돈만 500만원이 넘었다. 시험 대비를 위한 학원비와 시험장을 오가며 든 차비 등을 따지면 지난 5년간 2000만원 가까이 들었다. 지금도 할머니의 방에는 그동안 밑줄 쳐가며 공부해 너덜너덜해진 문제집과 응시표 등이 노란색 비닐봉지에 담겨 있다. 필기 시험에서 949번 떨어지는 동안 세상은 몰랐지만 할머니는 혼자서 싸웠다.

    그런데 차 할머니에게 운전면허증이 그토록 간절했던 것일까.

    959번 동안 몰랐던 이야기

    "9번 만에 미용사 실기 합격하고 패션학원·간호학원도 다녔어. 젊어선 내 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마실보다 공부가 재미있어. 저 세상 떠난 할아버지 삼아서 새차 타고 어디든 갈 거야.""공부를 해가지고 잉, 시험봐서 점수 잘 나오면 얼마나 좋아. 난 인지대 하나도 안 아까웠어요. 옛날에 학교에서도 공부했는데…."

    전남 장성이 고향인 차 할머니는 2남5녀 중 넷째딸로 태어났다. 1~3학년 과정을 동네 야학에서 배우고 당시 장성북국민학교 4학년에 입학했다. 그때 할머니 나이 15살. 전과(참고서)를 사서 공부하던 기억은 할머니의 행복한 추억 중 하나다.

    "부모도 땅이 있어야 자식들을 가르쳤을 텐데, 그때 중학교는 꿈도 못 꿨지. 나도 젊었을 때는 살기 바쁘고 2남2녀 키우느라 내 공부는 생각도 못했어요. 17년 전에 할아버지가 술병으로 돌아가신 후에 뭐든지 공부할 생각이 나드라고."

    차 할머니는 15년 전에 딴 미용사 자격증도 갖고 있었다. 익산직업기술학원에 다니며 3년 만에 땄다. 미용 학과시험은 4번 만에, 실기시험은 9번 만에 합격했다. 새벽 6시 동네에 들어오는 첫 버스를 타고 나가, 전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익산역에 도착한 후 또 버스를 갈아타고 학원에 닿았다. 6개월간 학원에 다니며 배운 후 나머지 기간에는 독학했다.

    "미용사 자격증 공부할 때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밭일하고 장사하고, 밤에 12시까지 공부할 때도 있었어요. 어떤 날은 꼬박 밤을 새워 밖이 훤해지더라고. 욕심이 많아서 남들보다 두 배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잘 모르고 부족하니까 열심히 할 수밖에요."

    늦은 나이에 딴 미용사 자격증은 크게 쓸모있지는 않았다. 미용실에 취직하기도 마땅치 않았지만, 그에게는 하나의 졸업장 같은 의미가 있었다. 이후 재봉틀을 사서 패션학원에 다니기도 했고, 간호학원에 문을 두드린 적도 있다. 요즘은 요리사 자격증에 관심이 많다.

    "시장에서 보니까 애들 과자도 만들고, 빵도 만들어 팔면 좋겠더라고요. 요리사(제과제빵) 자격증도 공부해보면 어떨까 싶은데."

    차 할머니는 동네 마실 다니는 것보다 공부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했다. 운전면허 학과시험을 공부할 때는 적어도 하루에 세 번은 문제집을 통독했다. 시장에서 장사할 때 손님 없는 틈틈이 들여다봤고, 집에 돌아와서도 잠자기 전에 졸음을 참아가며 꼭 한 번은 더 봤다.

    그런데도 어제 본 시험문제와 오늘 본 시험문제가 계속 바뀌면서 어렵기만 했다. 중간에 필기로 보던 학과시험이 PC학과시험으로 바뀌어 이때 컴퓨터도 처음으로 만져봤다. 학과시험이 끝난 후 90점, 100점을 맞아 합격한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번도 힘들다거나,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공부도 그렇고 뭐든지 중간에 하다 말면 모르는 채로 끝나잖아요. 학교나 학원도 다니다 말면 소용없고. 사람들이 자꾸 나한테 어떻게 계속했느냐고 묻는데 거 참…. 끝까지 나는 했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차 할머니의 애창곡은 송대관의 '차표 한 장'. 만일 창 밖으로 '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 예정된 시간표대로 떠나야 하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이 흘러나오는 하얀 새 차가 지나가거든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시길. 선글라스 쓴 빨간 입술의 운전자가 차 할머니일지도 모르니. 도전하는 아름다운 인생이여, 브라보!

    < 완주 |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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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0번만에 운전면허 합격

     

     

    운전 하기위해 천번을 응시하고

    는날 모두바쳐 공부한 차할머니

    풍에 돛달듯이 여생을 즐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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